"이제 어느 누구가 파면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를 대신하여 앞장서 노력 할까요. 그가 지금은 떠나지만 우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 떠난 동료는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1400여 조합원은 그가 다시 돌아올수 있도록 다같이 힘을 모아 주셔야 합니다"
경남도 인사위가 지난 17일 전국 공노조 경남부본부장을 맡아 조합원의 권익보호활동과 김태호 지사의 인사교류협약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는 이유로 임종만(마산시 녹지계장)씨를 파면하자 한 공무원이 마산지부 홈피에 올린 글이다.
공직사회에서의 파면은 당사자에겐 사망선고를 능가하는 최악의 굴욕이다. 공무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은 물론이요 수십년간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퇴직후 노후를 보장받는 연금(국가부담분)마저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파면에 따른 개인의 명예실추는 물론이요 그 가족들의 고통은 당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법내 법외 논쟁이 한창이던 때에 정을 맞은 '모난 돌' 임종만 계장은 올해 46세로 거제출신이다. 그가 파면선고를 받은 것은 근무지 이탈과 지방공무원법 위반 두가지 이유로 요약된다.
임 계장은 "지난주 인사위원회에 불려가 이 두가지에 대해 집중 추궁을 당했으나, 공창석 행정부지사 외 타 위원들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여서 공무원 신분을 박탈하는 징계까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파면 결정이 내려지니 황당 그 자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근무지 이탈 문제는 통상 출근과 동시에 전자 문서를 통해 출장 신청을 해 승인을 받고 갑작스런 변경 사항이 있을 시 상급자의 허락을 받고 이행하는 게 일반화되어 있으며, 특히 도청은 마산시와 일일 생활권으로 여비규정도 관내 출장으로 처리된다는 것.
따라서 기자회견을 위해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또, 지방공무원법 위반(집단행동금지)에 대해서도 "도 인사위는 2006년 3월부터 7월사이의 행적에 대해 책임을 물었는 바, 2006년 1월 '공무원 노조의 설립 및 운영등에 관한법률'의 시행으로 지방공무원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인사소청과 행정소송을 통해 경남도의 부당성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노조의 설립 및 운영등에 관한법률' 제3조 노동조합 활동의 보장및 관계 조항에는 "국가 및 지방공무원법 58조 제1항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을 적용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도 인사위의 파면 선고 주된 이유인 '지방공무원법 위반(기자회견 활동)'은 문제시 되지 않는 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약속파기한 김 지사가 파면감 임 계장은 "기자회견을 한 것도 김태호 지사가 지난 2004년 7월 보궐선거 직후, 도지사 집무실에서 경남본부장이 만나 부단체장급 등 교류인사는 당해 노조의 동의를 받고 단행한다는 요지의 인사교류협약을 해놓고 이제와서 불법단체 운운하며 자기가 서명한 협약이 파기되었다고 오리발을 내는 것이 파면사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지사가 정부가 법률로 인정하지도 않은 불법단체와 왜 인사교류협약을 체결했는 지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란 게 공노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전국 최초 떡값 안받기 감시활동 임 계장이 공무원 노조에 몸을 담은 것은 지난 2000년 '공무원 직장협의회' 창립때부터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공직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개인보다 조직적 활동이 효과적일 것"이란 판단에서 초대 마산시지부 사무처장을 스스로 자청해 맡았다.
당시만 해도 일선 읍 면 동장 줄세우기와 직원들의 업무 가중에 지나지 않았던 '실적심사'를 폐지시켰으며, 2002년 명절날 떡값 안받기 감시 활동은 신선한 충격으로 마산시민들은 물론 당시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언론들은 "역시 민주성지 마산답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들, 내 남편 아빠는 떳떳하다 파면 선고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실 인사위 회부된 사실을 알고 부인이 가슴을 졸여 온 것은 사실입니다. 결정직후 제가 공개를 했지요. 속마음은 어땠는 지 모르지만, '도둑질 해먹은 것도 아니고, 공익을 위해 한것인데..'라는 말로 오히려 저를 위로해줍디다" 이말을 하는 순간 헌병 출신의 날카로운 임 계장의 눈에 언듯 눈물이 비쳤다.
순간,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린 임 계장은 "죽기직전 까지 이 활동을 할 겁니다. 부당한 권력에 온몸으로 항거한 민주의 도시 마산답게 공직사회의 부정 부패를 과감히 질책하고, 모든 시민의 삶에 덕이 될수 있도록 성원해주십시요"며 조합원 동료들과 시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정의롭고 마음이 따뜻한 공무원 임 계장은 지난 2002년 7월 마산 회원동에 사는 한 반신불구의 할머니가 동냥으로 손주와 함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는 한 지역 주간신문의 보도를 보자 말자 "손주녀석 학원비에 보태라"며 50만원을 보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일체 밝히지도 않았다.
당시 이 주간신문은 임 계장의 성금 답지에 힘입어 포털사이트와 함께 공동 모금에 나서, 전국 누리꾼들이 1천여만원의 정성이 모였다. 또한 MBC-TV에서 반신불구 할머니에게 '러브하우스'를 지어주기도 했다. 반면, 임 계장과 같은 공무원 신분인 모 씨는 이 할머니를 위해 조성된 성금을 유용한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아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임 계장의 드러나지 않는 선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수년전부터 마산 관내 중급 장애인이면서 독거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익명으로 매달 쌀과 현금을 보내고 있다.
파면통보전까진 현직 유지 한편, 임 계장은 24일 현재까지 푸른도시조성 사무소에 정상 출근하고 있다. 경남도의 파면선고 통지문이 본인에게 도착하기 전까지는 공무원 신분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임 계장은 통지문을 받은 직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인사소청을 할 예정이다. 행정소송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청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관내 어려운 시민에게는 가슴이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온 임계장. 그는 이제 행정소송과 대국민 선전전을 통해 외롭지만 이유있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전쟁이 승리로 끝내 경남 공무원 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가를 부르게 될지, 아니면 좌절할 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성원이 가름하지 않을 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