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사람이 사는 ‘무념산장(無念山莊)’
"지갑없이 살아보셨나요. 안살아 보셨음 말을 하지 마세요"
때 되면 모두 버리는 가을의 가르침대로 사는 성락환씨
"지갑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를 겁니다" 올해 69세인 성락환씨는 창녕 대지 석동마을 출신으로 창녕중학교 졸업 후 대구와 서울등지를 유학하고 대기업 생활을 하다 스텐 주전자와 냄비를 생산하는 번듯한 중견기업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IMF등 외풍으로 사업이 부진하게 되어 10년전 모든 것을 잃고 전국을 방황하며 죽을 결심도 수차례 했었다. 여우도 죽을 때 고개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 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은 어떠할 까. 파김치가 되도록 지친 심신을 치유할 곳은 태어난 고향밖에 없음을 깨달은 그는 곧바로 혈혈단신이지만 고향 창녕을 찾았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300평 땅에 100m나 떨어진 산 계곡을 찾아 물을 끌어오고 그 흔한 중장비 한 대 의존하지 않고 오직 삽과 곡괭이, 호미로 아름드리 나무를 파내고 그곳에 배추, 돌배, 사과, 당근을 심고 살고 있었다.
연당마을 무념(武念)정원 주인장 성락환씨. 지갑없이 사는 삶이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그의 얼굴은 구김없는 환한 모습이다.
그렇게 만든 두 평 남짓한 연못에는 수압을 이용한 무동력 분수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함을 더해주고 당당하게 자리 잡은 수련 사이를 잉어들이 한가하게 유영을 즐기고 있다. 밭과 밭 사이를 잇는 좁은 길 바닥엔 비가 오는 날에도 이곳을 찾은 이들의 신이 진흙에 묻지 않도록 밭을 일구면서 나온 나무를 잘라 깔려 있어 남을 위한 주인장의 배려심이 어느 정도인지가늠케 한다. 점심시간대에 맞춰 안주인이 내 놓은 국수 한 그릇과 무농약으로 재배한 묵은 지의 맛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왔을 손님들은 말을 아껴가며 씹지도 않고 게눈 감추듯 ‘후루룩’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기느라 여념이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MSG(합성조미료) 없는 국수의 맛은 넘김후의 뱃속이 편한한 느낌을 갖게 한다.
눈 깜짝할새 비워있는 빈 국수 그릇에 아쉬움을 느낄라 치면 어느 새 소박한 탁자 위엔 개복숭 술과 파전, 그리고 묵이 한 접시 나온다. 개복숭 술은 집 바로 뒤편에 자생한 개복숭 나무에서 지난해 수확한 것으로 설탕을 넣지 않고 독한 소주만 부어 발효시킨 것이라 대여섯잔을 연거푸 마셨음에도 역한 술 냄새나 취기가 전혀없다. 주인장 성씨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었다. 그가 일군 정원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한 부인과 진돗개 한 마리와 한 우리에서 불편한 듯 보이지만 오누이 같이 정겨게 지내는 기러기와 닭 몇 마리가 그의 유일한 살아 움직이는 동물 친구였다. 그러던 중 지난해부터 외손자 녀석이 불쑥 찾아왔다. 불가항력으로 그 녀석 유치원 태워주면서 외부인들과의 접촉도 가뭄에 콩나 듯 시작됐다. 그간 EBS등 몇몇 방송에서 촬영해 방영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성씨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로타리, 라이온스, JC등 각종 사회단체 대표 활동을 통해 저명 인사들과의 친분도 쌓았고, 차문을 열어주는 CEO로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지갑이 두둑해야 어깨도 펴지는 게 남자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지갑없이 사는 인생이 너무 자유롭고 홀가분해 즐겁습니다."
안주인이 내준 국수를 일행과 함께 비운 뒤, 개복숭 술 몇잔을 맛나게 들이킨 성씨의 말에 중1 고1 두 자녀를 둔 기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두 시간여에 걸친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속세로 내려온 직후 그의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지 아주 조금을 알것 같았다.
"담번엔 뒷산에서 주워온 도토리와 기러기 한마리 잡아 주이소"
"하루전에 미리 연락만 주십시요. 언제든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두메산골에 있다보니 사람 냄새가 그립다는 성씨. 자연과 벗한 삶을 살아서인지 구김살 없는 얼굴에 새하얀 머리칼과 수염이 고화에서 본 신선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주인장 성씨는 벌이가 거의 없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창녕군 행복드림후원회(회장 김삼수)의 후원자로 가입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가을엔 모든 식물들은 열매와 잎을 훌훌 털어버린다. 그렇게 털어야 매서운 겨울 바람을 이겨 낼수 있고, 이듬해 봄날에 푸르름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게 가을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일찌감치 깨닫고 실천에 옮긴 무념산장 주인장 성락환씨가 기사를 탈고하는 이 시점에 갑자기 왜 부러워질까...
프롤로그:성락환씨의 정원은 기자가 임의대로 '무념(無念)산장'(잡다한 생각이 사라지는 정원)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을 있으면 추천바랍니다...ㅋ
<사진설명>
1.짙붉은 색을 자랑하며 만개한 개나팔꽃.
2.작은 연못엔 수압을 이용한 무동력 분수에서 시원한 물줄길가 푸른 하늘로 솟았다 떨어지고 수련 사이로 잉어들이 한가로인 유영을 즐기고 있다.
3.사람냄새가 그립다는 연당마을 정원 주인장 성락환씨. 하얀 머리칼과 수염, 구김없는 환한 얼굴이 천진난만한 신선의 얼굴을 닮았다.
4.창녕군 행복드림 회원들이 연당마을 정원을 찾아 국수와 파전을 곁들인 개복숭아 술과 막걸리 맛을 보고 있다.
5.불편한 듯 보이지만 한우리에서 진돗개와 기러기, 닭들이 오누이들처럼 오붓한(?) 한 동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