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 갈데없는 젊은 사람 밥주고 돈주고 재워준 사람을 죽였는 데, 동정을 받을 수 있도록 보도를 해서야 됩니까”
지난 8일 마산시 진북면의 한 농장에서 40대 후반의 농장 여주인이 9군데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산중부서는 사건직후 잠적한 이 농장에서 일을 하던 박모씨(29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사건발생 하루만인 지난 9일 오전 10시 대전 중구의 한 모텔에서 검거했다. A씨는 체포당시 18개월난 딸과 부인과 숨어있었다.
경찰의 발 빠른 대응으로 올린 개가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피해 여주인 유족의 입장은 격분 그 자체였다. 유족들은 일부 신문에서 ‘가난이 부른 살인’, ‘생활고에 시달리다가,,,주인 살해’, ‘월급 40만원’등의 요지로 보도해 피해자를 노동을 착취한 파렴치한 농장 주인으로 비하시키고, 용의자에게 동정을 보내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신문 기사가 게재된 일부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40만원 주고 일을 부려먹는 악덕 주인”, “이 추운 겨울에 갈데도 없는 사람을....”이라며 몇몇 누리꾼이 동정의 글을 올렸다. 과연 살해된 농장 여주인은 오갈데 없는 약자의 노동력을 착취한 파렴치한이었을 까.
<b>한적한 농장에 찾아든 불행</b>
인적이 드문 산기슭 작은 농장에서 오리와 칠면조를 키우며 회사원인 남편과 함께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던 오모씨(여. 49세). 평소 앓고 있던 요통이 겨울이라 심해 거동이 불편하던 그에게 수 십마리의 오리와 칠면조 사육은 힘에 부쳐 인부를 구할 요랑으로 지난해 11월 중순경 생활정보지에 “숙식 제공 월 60만원” 구인 광고를 냈다.
며칠 뒤, 오씨는 “여관 숙박비를 내주면 일하러 가겠다”는 박씨의 전화를 받았고, 이게 불행의 화근이 되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오씨는 남편 이모씨(56세. 회사원)과 함께 김해로 가 하루치 여관비를 내주고 박씨와 부인, 애기를 농장으로 데려왔다. 박씨 가족은 자그마한 여행용 가방 하나만을 달랑 든 초라한 행색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해도 박씨가 전과 9범인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외모가 범인과 달리 날카로운 인상이었으나 딸린 부인과 갓난아기가 있어 안심하고 농장에서 일하게 했다.
오씨는 한사람의 숙식만 제공하고 월 60만원을 주겠다는 입장에서 부인과 애기까지 부양하고 있는 박씨의 동의를 받아 월40만원을 주기로 하고 “오리나 칠면조 분양이 잘되면 올려주겠다”는 조건으로 일을 시켰다. 농장에 온 박씨는 처음 며칠간은 새벽에 일어나 불을 지피고 사료를 주는 등 부지런을 떨었으나, 일주일 정도 경과한 12월 경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피해 여주인 오씨의 남편이 있는 날이면 일을 열심히 하는 척 했으나,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였다는 것.
그래도 오씨 부부는 젊은 사람이 부인과 갓난아기를 데리고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해 기저귀와 옷가지를 사다 주고 박씨가 평소 앓고 있던 담석증 제거 수술비도 부담하는 등 갖은 편의를 제공했다.
하지만 박씨의 게으름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보다 못한 오씨는 “일하기 싫으면 다른 데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조심스럽게 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박씨는 “서울에서 경호사업을 하던 중 친구가 30억을 들고 도망을 갔는데 소송비용이 필요하다”며 현금 30만원을 빌려달라고 해 오씨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돈을 건넸다.
“내일 오겠다”며 부인과 함께 농장을 떠난 박씨는 다음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고, 3일이 지나서야 박씨의 부인에게서 “재판이 잘못되어 술을 먹느라 연락이 안되었는 데 내일 농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b>계속되는 박씨의 돈 요구</b>
농장으로 돌아온 박씨는 며칠 뒤, 재차 “30만원을 달라”고 요청했고, 오씨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고 한다. 사건당일인 8일 오전 11시 30분경 오씨는 “농장에서 일할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 며칠 말미를 줄테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말을 던지며 미안한 마음에 술잔을 나누던 중 격분한 박씨가 부엌에 있던 칼로 오씨의 온몸을 무려 9군데나 찔러 숨지게 했다.
현장에는 박씨의 부인과 18개월된 갓난 딸도 함께 있었음에도 처참하게 여주인을 살해한 것. 또한 범행직후 박씨의 행동은 너무나 침착했다. 사건직후인 12시 30분경 평소 박씨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피해자 오씨의 언니를 전화를 받고도 “동생분은 오리 암수 구별하고 있다”며 안심을 시킨뒤, 도피자금 마련을 위해 방을 뒤져 현금을 찾았으나 실패하자 거실에 있던 컴퓨터 본체를 뜯어 택시를 불러 타고 이를 처분해 대전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된 것이다.
사건을 최초 발견한 이는 오씨의 조카 정모(34세.회사원)씨 였다. 정씨가 농장을 찾은 시각은 이날 오후 3시 40분경. 부인과 6살날 아기와 함께 농장을 찾은 정씨는 농장 입구에 구리선 피복이 가로막혀 있고 농장 입구에 오토바이가 버려져 있어 이상히 여기던 중, 집안으로 먼저 들어간 부인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현관문을 연 순간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현관문 입구 거실에 가로 누운 이모 오씨의 주위로 시커먼 피가 고여 있었고 곧바로 119와 112에 신고를 했다.
<b>칼로 무려 아홉 번이나 난자</b>
피해자의 오빠인 오모씨는 “부모 죽인 원수도 아닌데 잔혹하게 9번이나 칼로 찔러 죽인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된다”며 “그것도 자기 부인과 갓난 딸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오씨는 또 “일부 신문이 박씨에게 동정을 보낼 수 있도록 보도한 것은 피해자와 유족들의 입장을 무시한 처사로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며 강력 비난했다.
유족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한 신문의 기사 리더에 “형사님 사형 받을 수 있도록 조서를 받아 주십시요”라고 박씨의 말을 보도한 데 있다. 유족들은 “체포되고 나서 그런 말을 할 바에 범행을 저지르지 말던지, 아니면 도피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던지 해야 할 것 아니냐”는 것. 이에 박씨를 조사했던 마산중부서 관계자는 “박씨가 그런 말을 한적 없다”며 “어디서 그런말이 나왔는 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오도 갈데없는 사람을 내쫓는 데 서운한 마음에 앙심을 품을 수도 있고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하기 좋은 말로 동정심을 보낼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그것도 무려 아홉 차례나 가슴과 등, 허벅지, 눈 주위를 난도질하면서 앗아 간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다.